비유물 고고학

문헌 기록 구전 전승을 고고학적으로 해석하는 방법

tobloom 2025. 11. 19. 14:39

문헌은 ‘사건’보다 ‘관점’을 기록한다

문헌은 과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지만, 그것이 기록된 목적과 관점은 사실 자체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고고학자는 문헌을 사실의 목록으로 보지 않고, ‘누가 무엇을 어떤 의도로 기록했는가’를 먼저 분석합니다. 기록자는 특정 계층이나 집단일 수 있으며, 이는 사건을 선택적으로 서술하거나 과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왕의 업적을 강조하는 문헌이라면 실제로는 훨씬 더 다양한 사건이 있었지만 중요도가 낮다고 간주되어 배제되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고학자는 문헌 속 정보가 아닌 ‘문헌의 편향’을 먼저 분석하면서 기록의 기저에 깔린 사회 구조와 시대 분위기를 파악합니다. 이것이 단순 역사 해석이 아니라 고고학적 해석입니다.

기록의 공백이 말해주는 또 다른 색다른 단서

문헌은 적힌 내용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적히지 않은 부분’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시대의 문헌에서 특정 지역의 존재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면, 이는 그 지역이 실제로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정치적으로 의도적으로 배제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고고학자는 이런 공백을 비유물 자료와 결합해 해석합니다. 특정 지역에서 대규모 주거 흔적과 농업 흔적이 발견되지만 문헌에서 무시되었다면, 이 지역은 권력 구조에서 소외된 집단의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즉, 기록의 공백은 고고학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해석되는 자료이며, 문헌의 침묵 또한 매우 강력한 증거입니다.

구전 전승은 사실보다 ‘패턴’을 보여준다

구전 전승은 정확한 연대나 사실을 담기 어렵지만, 반복되는 구조나 상징을 통해 과거의 사회적 감각을 전달합니다. 고고학자는 구전 전승을 하나의 ‘집단 기억’으로 해석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에서 “산이 갈라져 사람들이 길을 찾았다”는 전승이 반복된다면, 실제 지형 분석을 통해 과거에 산사태나 지형 이동이 있었는지 확인합니다. 또는 “강이 노했다”와 같은 전승은 홍수나 하천 변화가 반복된 지역일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구전은 과장을 포함하지만 ‘반복되는 요소’는 오랜 세월 동안 실제 환경 변화가 축적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고학자는 구전의 정확한 사건보다 패턴과 상징을 먼저 주목합니다.

문헌·구전과 비유물 자료를 결합하는 핵심 절차

고고학적으로 문헌과 구전을 해석할 때는 반드시 물질·환경 자료와 비교합니다. 예를 들어 문헌에서 “한 왕조가 대기근으로 몰락했다”는 기록이 있다면, 토양 퇴적층에서 당시 식생 감소, 농업 토양 황폐화, 기후 변동 흔적을 확인합니다.
이때 문헌과 환경 분석이 일치하면 기록의 사실성이 높아지고, 불일치하면 기록자의 관점이나 목적을 고려한 재해석이 이뤄집니다. 구전 전승도 마찬가지로 지형 변화, 자연재해 흔적, 인구 이동 경로와 비교하여 해석합니다. 문헌·구전·환경 자료가 서로 맞물릴 때 비로소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입체적으로 복원됩니다. 이 결합 방식은 현대 고고학에서 매우 중요한 분석 절차입니다.

‘신화’는 고대 환경을 상징적으로 기록한 것일 수도 있다

고대 신화는 종종 허구로 취급되지만, 고고학자들은 신화를 환경 변화의 은유적 기록으로 해석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바다가 삼켰다”는 표현은 실제로 해안선 침식, 지반 침하, 해일 같은 사건을 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대지의 분노”라는 표현은 화산폭발이나 지진을 은유한 것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신화는 자극적인 이야기 구조 덕분에 오랜 시간 변형 없이 전승되기 때문에 오히려 기후·지질 변화의 지속적 단서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고학자의 역할은 신화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신화가 반영하고 있는 자연적 기반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문헌이 없어도 구전과 환경 정보로 복원되는 역사

문헌이 거의 남지 않은 지역에서도 구전과 환경 자료는 결합되어 강력한 역사 복원 도구가 됩니다. 많은 아프리카·오세아니아·동남아 지역에서는 문헌 기록보다 구전 전승이 더 발전했는데, 고고학자는 구전을 통해 사건의 기본 구조를 파악하고 환경 자료로 구체성을 보완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큰 산을 넘어 새로운 땅을 찾았다”는 전승은 실제로 인구 이동 경로일 수 있으며, 산맥의 고갯길, 고하천 흔적, 퇴적층 변화 같은 자료와 비교하여 이동의 시기를 파악합니다. 문헌이 없어도 역사 복원은 충분히 가능하며, 이때 구전과 환경 자료는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합니다.

기록은 조합될 때 비로소 ‘역사’가 된다

문헌·기록·구전은 각각 성격이 다르며 단독으로 해석하면 편향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비유물 고고학의 관점에서 이 자료들은 서로 결합될 때 가장 강력한 역사 복원 도구가 됩니다. 문헌은 관점을, 구전은 패턴을, 환경은 실제 흔적을 제공합니다. 고고학자의 역할은 이 세 가지를 하나의 퍼즐처럼 조합해 과거의 흐름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즉, 기록은 조합될 때 비로소 ‘입체적 역사’가 되며, 이는 현대 고고학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연구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