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유적이 사라진 마을의 인간 활동 재구성 비유물 중심 사례 연구
건물 없이도 마을의 삶은 남아 있습니다
고대 마을을 연구할 때 많은 사람은 주거 건물, 기둥 흔적, 벽체 구조 등을 가장 중요한 자료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실무 연구에서 건물 흔적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계속 확인해 왔습니다.
특히 목재·흙벽 기반의 주거지는 수백 년만 지나도 거의 흔적이 사라져 마치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공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연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비유물고고학에서는 건물이 사라진 공간에서도 인간 활동은 미세 흔적으로 남는다는 원리로 접근합니다. 토양의 교란 방향, 미세 탄화물, 생활 폐기물 조각, 식생 교란 패턴, 동물군 변화 같은 비유물 자료는 마을의 구조와 생활 방식을 복원하기에 충분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이 글에서는 주거 유적이 사라진 마을에서 비유물을 활용해 인간 활동을 재구성한 실제적인 분석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토양 교란 패턴으로 복원하는 생활 동선과 공간 기능
저는 주거 건물이 사라진 공간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자료가 토양 교란 패턴이라고 판단합니다.
사람이 살았던 공간은 시간이 지나면 토양의 입자 구조가 일정한 방향으로 교란되며, 이는 비가 오거나 침식이 일어나도 비교적 오래 남습니다. 예를 들어 반복적으로 이동한 길은 미세한 입자가 눌려 압밀층을 형성하고, 생활 도구를 두고 사용한 공간은 토양 입자의 불균질성이 증가합니다.
비유물고고학 연구자는 이 차이를 이용해 마을 내부의 이동 동선을 재구성합니다. 토양 교란이 평행하게 배열된 지점은 생활도로였을 가능성이 높고, 원형이나 타원형의 교란이 반복되는 지점은 공동 작업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토양은 건물보다 오래 남는 ‘생활의 지문’이며, 주거지의 내부 구조를 추적하는 데 매우 유용한 자료입니다.
미세 탄화물 분포가 말해주는 요리·가열·난방 활동
비유물고고학에서 미세 탄화물은 생활 패턴을 밝히는 가장 직관적인 자료입니다. 저는 미세 탄화물이 사라진 마을에서도 조리 패턴을 복원할 수 있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탄화물의 농도가 높은 지점은 식재료 가열, 난방, 폐기물 소각 등 열을 사용하는 활동이 반복된 공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연구자는 탄화 입자의 크기·색조·농도를 분석하여 그 활동이 일정한 장소에서 지속되었는지, 혹은 이동식 화로를 사용했는지까지 판단합니다. 넓은 지역에 균일한 크기의 탄화물이 분포한다면 공동 조리 공간이 존재했음을 의미하며, 작은 지점에만 강한 탄화 흔적이 집중되어 있다면 이동식 화덕이나 단발성 소각 활동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세 흔적은 사라진 마을의 조리 문화, 난방 방식, 계절별 활동을 복원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식생 교란과 재성장 패턴으로 파악하는 마을 경계와 이용 범위
건물 유적이 사라진 지역에서는 식생의 변형이 마을의 크기와 경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저는 연구자가 식생 교란 패턴을 통해 ‘생활권’과 ‘비생활권’을 효율적으로 구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반복적으로 밟거나 자원을 채취한 지역은 뿌리가 얕은 식물만 성장하고 강한 교란종이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반면 사람이 거의 이용하지 않은 바깥쪽 영역은 자연식생이 풍부하게 성장합니다. 연구자는 이 차이를 토양의 씨앗 조성, 뿌리 흔적, 미세 화분 분석으로 확인합니다. 그 결과 마을의 중심부·주변부·경계가 구분되고, 각 영역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까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이는 건물의 흔적 없이도 마을의 공간 구조를 명확하게 재구성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비유물 분석 기법입니다.
동물군 잔해가 드러내는 식습관·폐기 방식·가축 관리 체계
저는 동물군 잔해가 사라진 마을의 ‘생활 기록’을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자료라고 판단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구역에 조류 뼈나 작은 포유류 뼈가 집중되어 있다면 그 장소가 조리 공간이었거나 폐기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말·소·사슴 같은 대형 동물의 뼈가 일정 패턴으로 흩어져 있다면 공동체가 고기를 마을 외곽에서 손질한 뒤 필요한 부분만 안쪽으로 가져왔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동물 뼈의 성장 단계나 파편화 정도를 분석하면 가축 관리 여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장 단계가 다양한 뼈가 함께 발견되면 장기간 사육이 이루어진 정착 공동체였음을 암시하며, 특정 생후 단계의 뼈만 집중되면 계절적 도축 패턴이 존재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분석은 주거 유적이 사라져도 공동체의 식습관과 생산 체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중요한 비유물 자료입니다.
생활 폐기물의 분포로 복원하는 마을의 사회적 구조
생활 폐기물은 작은 파편으로 남아도 공동체의 사회 구조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단서입니다. 저는 폐기물 분포 분석이 마을의 계층 구조, 가족 단위 배치, 활동 영역을 판단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음식물 잔해·소형 도구 파편·탄화물·파쇄된 골편 등이 한 지점에 반복적으로 축적되었다면 그 지점이 ‘쓰레기 적치 공간’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폐기물이 거의 없는 지점은 의례 공간·공동 모임 공간·혹은 주거 내 핵심 생활 구역일 가능성이 큽니다. 연구자는 폐기물의 분포 방향, 농도, 파편 크기를 함께 분석해 사회적 질서를 재구성합니다. 이는 건물이 남아 있지 않아도 지위·역할·경계가 존재했던 마을의 구조를 복원하게 해 주는 고도의 비유물 분석 방식입니다.